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9-上) - 자유행동일(나라답사) (2/19)
2월 19일 일요일. 이 날은 자유행동일로, 정해진 일정이 없었고 센터에서도 하루 전체를 자유로이 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는 교토 천도 이전, 약 90여년간 일본의 수도 역할을 했던 나라에 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일본의 역사는 오랫동안 간사이 지방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6세기 정도부터 아스카(飛鳥)를 중심으로 천황이 거주하며 정치를 하기 시작했고, 이후 헤이조쿄(平城京, 지금의 나라)로 수도를 옮겼다가 다시 헤이안쿄(平安京, 지금의 교토)로 옮기게 된다. 이 중 교토는 연수 중 일부나마 들러봤고, 나머지 곳들을 보기 위해 다시 가고 싶다고는 해도 하루 안에 갔다오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적지들이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주요 사적지들이 한 곳이 몰려 있어 하루 안에 둘러볼 수 있는 나라를 가기로 했다.
나의 나라 답사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방방곡곡에 있는 문화재를 소개한 유홍준이 국경을 넘어,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었고, 언젠가 한번 그 책에 소개된 장소들에 직접 가 보고 문화재들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답사기 일본편은 총 4권으로 규슈지역 1권, 아스카와 나라가 1권, 교토가 2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나라에 가게 되는 것이었다.
하루만에 도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절과 신사가 문을 여는 8시에는 첫 장소에서 답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이들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전까지 내가 가고 싶던 장소들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경로상 첫 답사지는 오사카에서 나라 시내로 넘어가는 도중의 이카루가 정에 있는 법륭사(法隆寺)로 정해졌다. 법륭사에 8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나는 6시가 되기 전에 간사이 센터를 나왔다. 아침으로는 오사카 시내로 간다는 건이와 함께 린쿠타운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도시락을 샀다. 이후, 나는 난카이선 열차을 타고 올라가 신이마미야에서 나라선을 운행하는 JR열차로 갈아탄 뒤, 법륭사역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30분여를 전철을 타고 갔다. '에키벤' 문화를 체험해 본답시고 도시락도 전철 안에서 먹었다. 혹시 음식냄새나 먹는 행동이 주변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했더니 JR 나라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일반 열차와 비슷한 객석 배치를 가지고 있었고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어서 사람이 적어 다행히 큰 불편을 끼치는 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나의 나라 답사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방방곡곡에 있는 문화재를 소개한 유홍준이 국경을 넘어,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었고, 언젠가 한번 그 책에 소개된 장소들에 직접 가 보고 문화재들을 눈으로 보고 싶었다. 답사기 일본편은 총 4권으로 규슈지역 1권, 아스카와 나라가 1권, 교토가 2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중 나라에 가게 되는 것이었다.
하루만에 도는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절과 신사가 문을 여는 8시에는 첫 장소에서 답사를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해야 이들이 문을 닫는 오후 5시 전까지 내가 가고 싶던 장소들을 다 돌아볼 수 있었다. 경로상 첫 답사지는 오사카에서 나라 시내로 넘어가는 도중의 이카루가 정에 있는 법륭사(法隆寺)로 정해졌다. 법륭사에 8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나는 6시가 되기 전에 간사이 센터를 나왔다. 아침으로는 오사카 시내로 간다는 건이와 함께 린쿠타운 역으로 향하는 길에서 도시락을 샀다. 이후, 나는 난카이선 열차을 타고 올라가 신이마미야에서 나라선을 운행하는 JR열차로 갈아탄 뒤, 법륭사역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30분여를 전철을 타고 갔다. '에키벤' 문화를 체험해 본답시고 도시락도 전철 안에서 먹었다. 혹시 음식냄새나 먹는 행동이 주변 사람에게 민폐가 될까 걱정했더니 JR 나라선을 운행하는 열차는 일반 열차와 비슷한 객석 배치를 가지고 있었고 일요일의 이른 아침이어서 사람이 적어 다행히 큰 불편을 끼치는 일 없이 먹을 수 있었다.
#법륭사
법륭사역에서 법륭사까지는 다시 걸어서 20분을 가야 했다. 이 때부터, 이 날 내 다리는 혹사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법륭사 입구에 도착하니, 간단한 관광안내소가 있었고, 마침 동네 장날이었는지, 여러 천막들이 앞 공터에 세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법륭사 남대문 쪽으로 향했다.
법륭사는 쇼토쿠 태자가 607년 세운 절로, 한번 불에 탔다가 670년 재건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한번도 소실되거나 파괴되는 일 없이 1300년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덕분에 법륭사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상당수 건물은 그 자체로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법륭사가 일본의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이 곳에는 백제관음상이란 이름의, 아주 아름다운 불상도 있어 건물 뿐만이 아닌 소장 문화재들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경내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금당과 오중탑을 중심으로 하는 서원가람, 백제관음상을 위시한 법륭사의 각종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대보장전, 비불 구세관음상을 모신 몽전과 사리전이 위치한 동원가람이 있다. 추가로 그 동쪽에는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절로 개조한 비구니 절인 중궁사(中宮寺)가 붙어 있다. 절의 모든 부분이 쇼토쿠 태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법륭사는 신격화된 쇼토쿠 태자를 모시는 불교 종파인 '성덕종(聖德宗)'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법륭사역에서 법륭사까지는 다시 걸어서 20분을 가야 했다. 이 때부터, 이 날 내 다리는 혹사될 것이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법륭사 입구에 도착하니, 간단한 관광안내소가 있었고, 마침 동네 장날이었는지, 여러 천막들이 앞 공터에 세워지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법륭사 남대문 쪽으로 향했다.
법륭사는 쇼토쿠 태자가 607년 세운 절로, 한번 불에 탔다가 670년 재건되었다. 그 이후부터는 한번도 소실되거나 파괴되는 일 없이 1300년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덕분에 법륭사를 소개할 때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상당수 건물은 그 자체로도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법륭사가 일본의 첫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이 곳에는 백제관음상이란 이름의, 아주 아름다운 불상도 있어 건물 뿐만이 아닌 소장 문화재들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경내는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금당과 오중탑을 중심으로 하는 서원가람, 백제관음상을 위시한 법륭사의 각종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는 대보장전, 비불 구세관음상을 모신 몽전과 사리전이 위치한 동원가람이 있다. 추가로 그 동쪽에는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절로 개조한 비구니 절인 중궁사(中宮寺)가 붙어 있다. 절의 모든 부분이 쇼토쿠 태자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 법륭사는 신격화된 쇼토쿠 태자를 모시는 불교 종파인 '성덕종(聖德宗)'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서원가람
그 자체로도 국보인 법륭사 남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금당과 오중탑있는 서원가람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나온다. 이 문도 국보이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갔을 당시에 중문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 왼쪽의 매표소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이곳의 입장료는 2017년 기준으로 위의 세 구역을 다 합쳐서 1500엔이다. 다른 절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서원가람으로 들어가자 마당의 서쪽에는 오중탑이, 동쪽에는 금당이 위치해 있었고 정면에는 대강당이 보였다. 나는 먼저 오중탑 쪽으로 향했다. 오중탑 자체는 소복이 내려앉은 느낌이, 한국의 목조건물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유홍준 교수에 따르면 지붕 끄트머리의 경사도가 한국보다는 낮은 각도로 되어 있어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이 오중탑 내부에는 동서남북 4면으로 각각 불교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나무로 깎아 입체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각자 석가의 열반 장면(북), 석가 사후의 사리 배분(서),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불교 교리를 놓고 행한 토론(동), 먼 미래에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내려오는 장면(남)이 표현되어 있었다. 또, 이 오중탑은 1300년 전에 지어질 때부터 지진을 염두에 두고 내진설계로 지어져, 그 동안 수많은 지진이 있었지만 무너지는 일 없이 원래의 모습을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그 자체로도 국보인 법륭사 남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금당과 오중탑있는 서원가람으로 들어가는 중문이 나온다. 이 문도 국보이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갔을 당시에 중문은 보수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나는 그 왼쪽의 매표소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참고로 이곳의 입장료는 2017년 기준으로 위의 세 구역을 다 합쳐서 1500엔이다. 다른 절에 비하면 꽤 비싼 편이지만, 그 정도의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서원가람으로 들어가자 마당의 서쪽에는 오중탑이, 동쪽에는 금당이 위치해 있었고 정면에는 대강당이 보였다. 나는 먼저 오중탑 쪽으로 향했다. 오중탑 자체는 소복이 내려앉은 느낌이, 한국의 목조건물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유홍준 교수에 따르면 지붕 끄트머리의 경사도가 한국보다는 낮은 각도로 되어 있어서 그런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이 오중탑 내부에는 동서남북 4면으로 각각 불교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나무로 깎아 입체감 있게 재현해 놓았다. 각자 석가의 열반 장면(북), 석가 사후의 사리 배분(서),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이 불교 교리를 놓고 행한 토론(동), 먼 미래에 미륵불이 이 세상에 내려오는 장면(남)이 표현되어 있었다. 또, 이 오중탑은 1300년 전에 지어질 때부터 지진을 염두에 두고 내진설계로 지어져, 그 동안 수많은 지진이 있었지만 무너지는 일 없이 원래의 모습을 지켜오고 있다고 했다.
법륭사 오중탑
다음 순서는 금당. 아스카 시대의 조각인 석가삼존상과 약사여래상, 사천왕상부터 시작해서 가마쿠라 시대의 아미타삼존상, 헤이안 시대의 불상 등이 모셔져 있는 국보와 중요문화재의 향연이다. 내가 이와 같은 미술품을 보는 능력은 없어서 자세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과 평화를 바라며 이러한 불상들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금당 벽에 그려진 벽화 또한 유명한 것 중 하나이다. 비록 사고로 인해 불타버렸지만, 다행히 이전에 찍어둔 사진이 있어서 복원은 가능했다고 한다. 이 벽화는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담징이 일본에 와서 죽은 시기가 이 금당 건물을 포함한 법륭사 재건 한참 이전이기 때문에, 담징이 그렸을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물론 일본이 한국에 대한 고대사 콤플렉스가 있어서, 한국에서 온 불상이나 문화를 작자미상으로 알리거나, 중국에서 들어온 문화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와 같이 비교적 확실한 경우에는 우리도 괜히 일본의 문화재에 대한 정신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에서 벗어나 일본 자체의 능력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 두 건물의 북쪽에 있는 건물인 대강당은 법륭사 재건 이후에 한번 더 소실되어 재건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990년에 재건되어 천년을 넘게 서 있는 건물이라고 했다. 과거에는 법륭사의 승려들이 모여 토론하고 공부하는 장소였다지만, 지금은 이곳에도 약사삼존상이 모셔져 사람들의 참배를 받고 있었다.
대강당과 연결되어 있는 회랑을 걸으며 동원가람의 중심 마당을 빠져나오니, 성령원이 있었다. 이 건물은 예전에는 승려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했는데, 헤이안 시대에 일부를 개조하여 쇼토쿠태자상을 안치해 두었다고 한다. 실제로 안에 보니 상이 모셔져 있는 듯 했고, 쇼토쿠 태자에 대한 일본인들의 믿음을 입증하듯 이 곳에 기도하는 일본인들도 볼 수 있었다.
##대보장전
성령원을 지나면 대보장전에 들어가게 된다. 법륭사의 각종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90년대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또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들도 하나하나가 국보 아니면 중요문화재인, 이름 그대로 보물들이 소장된 건물이다. 들어가면서 보니 악몽을 길몽으로 바꿔준다는 몽위관음, 딱정벌레 수천마리의 껍데기를 이어붙여서 본래의 색을 냈다는 옥충주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건물의 다른 한편에는, 원래 금당 벽면 위쪽에 붙여져 있던 불교의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을 그린 비천도 중 한 개가 전시되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불상은 그 중 가장 유명한 백제관음상이었다. 그 형식이 백제의 것이라 하지만, 제작자와 제작장소 등이 알려져 있지 않고, 어느샌가부터 법륭사에 소장되게 되었다는 미스터리의 불상이기도 하다. 2m가 넘는 장신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백제관음상 앞에 서자, 순간 그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관음상이 물로 만들어져 순간 굳은 것과 같이 유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심미안이 부족해 더 이상의 묘사는 하지 못하겠으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꼭 한번씩 가서 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성령원을 지나면 대보장전에 들어가게 된다. 법륭사의 각종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90년대에 새로 지은 건물이라고 했다. 또한 이곳에 전시되어 있는 문화재들도 하나하나가 국보 아니면 중요문화재인, 이름 그대로 보물들이 소장된 건물이다. 들어가면서 보니 악몽을 길몽으로 바꿔준다는 몽위관음, 딱정벌레 수천마리의 껍데기를 이어붙여서 본래의 색을 냈다는 옥충주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 건물의 다른 한편에는, 원래 금당 벽면 위쪽에 붙여져 있던 불교의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장면을 그린 비천도 중 한 개가 전시되어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불상은 그 중 가장 유명한 백제관음상이었다. 그 형식이 백제의 것이라 하지만, 제작자와 제작장소 등이 알려져 있지 않고, 어느샌가부터 법륭사에 소장되게 되었다는 미스터리의 불상이기도 하다. 2m가 넘는 장신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백제관음상 앞에 서자, 순간 그를 보고 있는 내 자신이 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때 내가 받았던 느낌은 관음상이 물로 만들어져 순간 굳은 것과 같이 유연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심미안이 부족해 더 이상의 묘사는 하지 못하겠으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다들 꼭 한번씩 가서 봤으면 하는 생각이다.
##동원가람
대보장전을 나오면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좀 걷게 된다. 양쪽으로는 스님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고, 그를 지나면 동원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동원가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은 바로 몽전(夢殿)이다. 몽전이라 하는 이름은 이곳에서 쇼토쿠 태자가 불경을 배울 때 꿈에 귀인이 나타나 그의 공부를 도왔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행신이라고 하는 스님이 쇼토쿠 태자 사후 폐허가 되고 있던 본래의 몽전을 다시 세운 곳이라고 한다. 안에는 쇼토쿠 태자의 모습을 본땄다고 하는 구세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그 불상이 세상의 빛을 보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어 오랫동안 비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 지역을 조사한 한 일본인 교수와 미국인에 의해서 처음으로 열리게 되어, 이후에는 연 2회 공개하여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그 기간이 아니어서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 했다. 이 불상 또한 쇼토쿠 태자가 아닌 백제의 왕을 본따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으니 진실이 무엇인지는 불상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참고로 몽전 건물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몽전을 지탱하는 기둥, 몽전 안의 구세관음상을 모신 작은 나무 상자도 모두 팔각으로, 모양에 있어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는 쇼토쿠 태자가 2세일 때 그가 합장한 자리에서 발견되었다는 사리를 모시는 사리전(舎利殿), 쇼토쿠 태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는 회전(絵殿)이 있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 1월 1일부터 3일간만 공개한다고 한다. 상당수의 문화재도 기간한정으로 공개인 것을 보며 아마 일본인들의 한정판 좋아하는 성격이 이런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대보장전을 나오면 동쪽으로 난 길을 따라 좀 걷게 된다. 양쪽으로는 스님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있고, 그를 지나면 동원가람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동원가람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은 바로 몽전(夢殿)이다. 몽전이라 하는 이름은 이곳에서 쇼토쿠 태자가 불경을 배울 때 꿈에 귀인이 나타나 그의 공부를 도왔다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행신이라고 하는 스님이 쇼토쿠 태자 사후 폐허가 되고 있던 본래의 몽전을 다시 세운 곳이라고 한다. 안에는 쇼토쿠 태자의 모습을 본땄다고 하는 구세관음상이 모셔져 있다. 그 불상이 세상의 빛을 보면 재앙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어 오랫동안 비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 지역을 조사한 한 일본인 교수와 미국인에 의해서 처음으로 열리게 되어, 이후에는 연 2회 공개하여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는 그 기간이 아니어서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 했다. 이 불상 또한 쇼토쿠 태자가 아닌 백제의 왕을 본따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일본 측에서는 부정하고 있으니 진실이 무엇인지는 불상만이 알고 있을 일이다. 참고로 몽전 건물은 팔각형을 이루고 있으며, 몽전을 지탱하는 기둥, 몽전 안의 구세관음상을 모신 작은 나무 상자도 모두 팔각으로, 모양에 있어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외에는 쇼토쿠 태자가 2세일 때 그가 합장한 자리에서 발견되었다는 사리를 모시는 사리전(舎利殿), 쇼토쿠 태자의 일생을 그린 그림이 보관되어 있다는 회전(絵殿)이 있었다. 이 건물들은 모두 1월 1일부터 3일간만 공개한다고 한다. 상당수의 문화재도 기간한정으로 공개인 것을 보며 아마 일본인들의 한정판 좋아하는 성격이 이런 데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중궁사 본당
#중궁사
서원가람을 나오면 그와 붙어있는 건물이 중궁사이다.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만든 절인 중궁사는 비구니절로, 마찬가지로 성덕종 소속이기는 하지만 법륭사와는 별개의 절이다. 입장료도 따로 냈다. 중궁사에는 도래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었다. 한국의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양식도 비슷해 2016년에는 이 유사성이 계기가 되어 위의 두 반가사유상이 함께 모여 서울과 도쿄의 양국 국립박물관에서 돌아가면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중궁사의 또 다른 문화재는 쇼토쿠 태자 사후 그의 아내가 극락세계의 그를 상상하며 수놓은 '천수국 만다라 수장'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갔을 때는 이는 다른 박물관에 대여되어 모사본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서원가람을 나오면 그와 붙어있는 건물이 중궁사이다.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가 살던 집을 개조해서 만든 절인 중궁사는 비구니절로, 마찬가지로 성덕종 소속이기는 하지만 법륭사와는 별개의 절이다. 입장료도 따로 냈다. 중궁사에는 도래인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조 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었다. 한국의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양식도 비슷해 2016년에는 이 유사성이 계기가 되어 위의 두 반가사유상이 함께 모여 서울과 도쿄의 양국 국립박물관에서 돌아가면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중궁사의 또 다른 문화재는 쇼토쿠 태자 사후 그의 아내가 극락세계의 그를 상상하며 수놓은 '천수국 만다라 수장'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갔을 때는 이는 다른 박물관에 대여되어 모사본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법륭사 앞에 벌려져 있던 마을 장날
#나라 시내로
법륭사와 중궁사를 나오니 내가 들어갈 때 준비되고 있었던 장터는 이미 완성되어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곳에도 가 보고 싶었지만, 법륭사가 위치한 이카루가 자체가 시골인지라 나이드신 분이 많아 한국 고등학생으로서 들어가기에는 어색해 자세히 돌아다녀 보지는 못했다. 그 장면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역으로 걸어가 나라역으로 향했다.
JR 나라역은 나라 시내는 몰라도 관광 명소들이 몰려있는 나라공원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있다. 나처럼 법륭사를 거쳐서 간다면 어쩔 수 없이 JR선을 이용해야 하지만, 아니라면 긴테쓰선을 타고 긴테쓰 나라역에 내리는 것이 훨씬 목적지에는 가까울 것이다. 어쨌거나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JR나라역에서 15분간 걸어 나라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법륭사와 중궁사를 나오니 내가 들어갈 때 준비되고 있었던 장터는 이미 완성되어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그곳에도 가 보고 싶었지만, 법륭사가 위치한 이카루가 자체가 시골인지라 나이드신 분이 많아 한국 고등학생으로서 들어가기에는 어색해 자세히 돌아다녀 보지는 못했다. 그 장면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역으로 걸어가 나라역으로 향했다.
JR 나라역은 나라 시내는 몰라도 관광 명소들이 몰려있는 나라공원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있다. 나처럼 법륭사를 거쳐서 간다면 어쩔 수 없이 JR선을 이용해야 하지만, 아니라면 긴테쓰선을 타고 긴테쓰 나라역에 내리는 것이 훨씬 목적지에는 가까울 것이다. 어쨌거나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JR나라역에서 15분간 걸어 나라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동대사
나는 가장 먼저 동대사(東大寺)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는 흥복사와 나라국립박물관이 있었다. 흥복사는 나오는 길에 들를 예정이었고, 박물관은 일단 절들이 먼저라는 생각에 지나쳐 갔다. 이 길은 흥복사와 국립박물관을 오른편에 두고 나라공원 중심부로 향하는 길인 동시에 나라의 마스코트인 사슴이 넘쳐나는 길이다. 나라에서는 사슴이 신의 사자로 여겨져, 함부로 못 대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나라 공원은 사슴 반 사람 반으로, 정말 사슴천국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이다. 곳곳에 사슴이 먹는 사슴전병을 파는 분들이 앉아 계시고, 인간을 전병자판기로밖에 생각 안하는 사슴들은 겁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간다. 사슴들에 대한 대접은 상당해서 사슴 똥을 치우는 분들이 계속 돌아다니고, 길을 잃은 사슴들을 위해 출동하는 사슴 구조대 차가 간간히 도로에서 보이기도 한다. 동대사와 가스가타이샤까지 이어지는 나라공원 전체에 이런 풍경이 이어지게 된다. 이같이 사슴들 자체로도 하나의 큰 관광요소가 되는 곳이 나라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살아있는 사슴보다는 가만히 제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불상과 절이었으니, 마감 시간전에 전부를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쫓기며 빠른 걸음으로 동대사로 향했다. 동대사 하면 역시 대불전과 그 안에 계신 대불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이외에도 동대사에는 가 봐야 할 장소들이 많다. 황가의 보물들을 모아둔 정창원과 산 위에 위치한 이월당과 삼월당 모두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나는 이 곳에도 모두 가 볼 계획이었다.
나는 가장 먼저 동대사(東大寺)로 향했다. 가는 길 중간에는 흥복사와 나라국립박물관이 있었다. 흥복사는 나오는 길에 들를 예정이었고, 박물관은 일단 절들이 먼저라는 생각에 지나쳐 갔다. 이 길은 흥복사와 국립박물관을 오른편에 두고 나라공원 중심부로 향하는 길인 동시에 나라의 마스코트인 사슴이 넘쳐나는 길이다. 나라에서는 사슴이 신의 사자로 여겨져, 함부로 못 대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나라 공원은 사슴 반 사람 반으로, 정말 사슴천국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소이다. 곳곳에 사슴이 먹는 사슴전병을 파는 분들이 앉아 계시고, 인간을 전병자판기로밖에 생각 안하는 사슴들은 겁도 없이 사람에게 다가간다. 사슴들에 대한 대접은 상당해서 사슴 똥을 치우는 분들이 계속 돌아다니고, 길을 잃은 사슴들을 위해 출동하는 사슴 구조대 차가 간간히 도로에서 보이기도 한다. 동대사와 가스가타이샤까지 이어지는 나라공원 전체에 이런 풍경이 이어지게 된다. 이같이 사슴들 자체로도 하나의 큰 관광요소가 되는 곳이 나라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살아있는 사슴보다는 가만히 제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불상과 절이었으니, 마감 시간전에 전부를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에 쫓기며 빠른 걸음으로 동대사로 향했다. 동대사 하면 역시 대불전과 그 안에 계신 대불이 가장 큰 목적이지만, 이외에도 동대사에는 가 봐야 할 장소들이 많다. 황가의 보물들을 모아둔 정창원과 산 위에 위치한 이월당과 삼월당 모두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으로, 나는 이 곳에도 모두 가 볼 계획이었다.
?????
##대불전
동대사의 거대한 화엄문을 지나서 일단 옆의 동대사 박물관을 지나면 먼저 들어가게 되는 곳이 대불전이다. 이 안에 모셔진 대불은 높이 16m에 무게가 450톤인,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불상이다. 일단 들어가면 그 스케일에 압도되게 된다. 이 대불의 제작을 처음 명령한 사람은 쇼무천황으로 평화를 기원하며 이 불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평화를 기원하는 전국의 사람들의 뜻(=돈)을 모아 이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본 새전함 옆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의 피해 복구를 기원하는 성금함이 따로 놓여져 있었다. 그 마음 좀 국제적으로 받들어 이웃 나라와도 잘 지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불전은 정면에서 들어가 왼쪽으로 돌아 대불의 뒤편을 통해서 오른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대불의 뒤편에는 대불전이 여러 번 지어졌다는 내용과 함께 그 모형들이 각각 전시되어 있었다. 나오는 오른쪽 뒤편에는 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기둥 앞에 아이들이 죽 줄을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기둥 아래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 구멍을 기어서 통과하면 건강해 진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 구멍에 들어갈 나이와 몸 크기는 한참 지났기에 그냥 바로 대불전 밖으로 나왔다.
대불전을 나오니 오른쪽 앞면에 목조상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불상은 얼굴만 내놓고 나머지 부분에는 빨간색의 보존용 천이 둘러져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서 옆에 있던 설명을 읽어보니 그 목조상은 어떤 스님을 새긴 것으로, 그 스님의 신체부위를 만지면 자신의 해당 부위의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마치 교토의 기타노덴만궁에서 본 황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상은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라 사람들의 손길을 타며 보존에 애로사항이 많았고, 그래서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덮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동대사 경내도 상당히 넓어서 다음 건물로 생각해 놓은 정창원(正倉院)까지는 상당히 뛰어가야 했다. 정창원은 황가의 보물을 모아놓은 창고와 같은 곳인데, 나라시대부터 시작해서 그간 천황이 받은 선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국사시간에 배운 신라의 민정문서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물론 안의 유물은 특별전 형식으로만 가끔씩 공개를 하고 평소에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동남아 가옥마냥 기둥으로 땅에서 띄워 세워놓은 건물만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들르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니 아뿔싸, 문이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일요일에는 문을 안 여는 것이었다. 미리 조사를 자세히 하고 오지 않은 내 실수였다.
동대사의 거대한 화엄문을 지나서 일단 옆의 동대사 박물관을 지나면 먼저 들어가게 되는 곳이 대불전이다. 이 안에 모셔진 대불은 높이 16m에 무게가 450톤인,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불상이다. 일단 들어가면 그 스케일에 압도되게 된다. 이 대불의 제작을 처음 명령한 사람은 쇼무천황으로 평화를 기원하며 이 불상을 만들고자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평화를 기원하는 전국의 사람들의 뜻(=돈)을 모아 이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본 새전함 옆에는 동일본 대지진과 구마모토 지진의 피해 복구를 기원하는 성금함이 따로 놓여져 있었다. 그 마음 좀 국제적으로 받들어 이웃 나라와도 잘 지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불전은 정면에서 들어가 왼쪽으로 돌아 대불의 뒤편을 통해서 오른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대불의 뒤편에는 대불전이 여러 번 지어졌다는 내용과 함께 그 모형들이 각각 전시되어 있었다. 나오는 오른쪽 뒤편에는 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기둥 앞에 아이들이 죽 줄을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기둥 아래에 큰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이 구멍을 기어서 통과하면 건강해 진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물론, 나는 그 구멍에 들어갈 나이와 몸 크기는 한참 지났기에 그냥 바로 대불전 밖으로 나왔다.
대불전을 나오니 오른쪽 앞면에 목조상이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불상은 얼굴만 내놓고 나머지 부분에는 빨간색의 보존용 천이 둘러져 있었다. 이유가 궁금해서 옆에 있던 설명을 읽어보니 그 목조상은 어떤 스님을 새긴 것으로, 그 스님의 신체부위를 만지면 자신의 해당 부위의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마치 교토의 기타노덴만궁에서 본 황소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상은 나무로 만들어졌는지라 사람들의 손길을 타며 보존에 애로사항이 많았고, 그래서 지금은 그런 방식으로 덮어 놓은 것이라고 했다.
동대사 경내도 상당히 넓어서 다음 건물로 생각해 놓은 정창원(正倉院)까지는 상당히 뛰어가야 했다. 정창원은 황가의 보물을 모아놓은 창고와 같은 곳인데, 나라시대부터 시작해서 그간 천황이 받은 선물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었다. 국사시간에 배운 신라의 민정문서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물론 안의 유물은 특별전 형식으로만 가끔씩 공개를 하고 평소에는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그래도 동남아 가옥마냥 기둥으로 땅에서 띄워 세워놓은 건물만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그곳을 들르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착하니 아뿔싸, 문이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일요일에는 문을 안 여는 것이었다. 미리 조사를 자세히 하고 오지 않은 내 실수였다.
동대사 대불전
뭔가 생긴 것도 코믹한 스님
##이월당 & 삼월당
나의 미숙함을 반성하며, 나는 산을 올라 이월당(二月堂)으로 향했다. 이월당은 매년 2월에 이곳에서 오미즈토리(お水取り)라는 이름의 우물물뜨기 행사와 법회가 열린다고 해서 이월당이라고 했다. 2월이라고 하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그 법회가 끝난 시기였기에 직접 행사를 볼 수는 없었다. 이월당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 또한 비불이라서 근 몇백년 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밖에서 건물을 보는 일과 그 건물 난간에서 나라시내를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이후 향한 삼월당의 원래 이름은 법화당(法華堂)으로, 여기도 3월에 법화회라는 이름의 법회가 열려서 그런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이 곳에 모셔진 불상은 18구로, 그 중 14구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또, 그 중 단연 압권인 것은 중앙에 모셔진 불공견삭관음상이라고 했다. 이 불상을 보기 위해 그까지 올라간 만큼, 추가의 입장료도 흔쾌히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방에 4m 높이의 불공견삭관음상을 중심으로 불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크고 높은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울림소리와 그 어두컴컴한 배경이 섞여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가운데, 그 불상을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다른 불상에서는 인자함과 평온함을 느꼈다면 이 관음상에서는 압도됨과 함께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불상인데, 온갖 악한 사람도 구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약간 무섭게 위엄을 갖추게 되었을까, 법륭사의 백제관음상처럼, 이 관음상 앞에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히 비는 내용도, 불상을 자세히 뜯어볼 눈도 없었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미숙함을 반성하며, 나는 산을 올라 이월당(二月堂)으로 향했다. 이월당은 매년 2월에 이곳에서 오미즈토리(お水取り)라는 이름의 우물물뜨기 행사와 법회가 열린다고 해서 이월당이라고 했다. 2월이라고 하지만, 내가 갔을 때에는 이미 그 법회가 끝난 시기였기에 직접 행사를 볼 수는 없었다. 이월당 안에는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이 또한 비불이라서 근 몇백년 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밖에서 건물을 보는 일과 그 건물 난간에서 나라시내를 바라보는 일 뿐이었다.
이후 향한 삼월당의 원래 이름은 법화당(法華堂)으로, 여기도 3월에 법화회라는 이름의 법회가 열려서 그런별명을 얻었다고 했다. 이 곳에 모셔진 불상은 18구로, 그 중 14구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고 했다. 또, 그 중 단연 압권인 것은 중앙에 모셔진 불공견삭관음상이라고 했다. 이 불상을 보기 위해 그까지 올라간 만큼, 추가의 입장료도 흔쾌히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두컴컴한 방에 4m 높이의 불공견삭관음상을 중심으로 불상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크고 높은 건물 안에서 들려오는 울림소리와 그 어두컴컴한 배경이 섞여 동굴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가운데, 그 불상을 직접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다른 불상에서는 인자함과 평온함을 느꼈다면 이 관음상에서는 압도됨과 함께 경외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불상인데, 온갖 악한 사람도 구제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약간 무섭게 위엄을 갖추게 되었을까, 법륭사의 백제관음상처럼, 이 관음상 앞에서도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앉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히 비는 내용도, 불상을 자세히 뜯어볼 눈도 없었지만, 분위기에 압도당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살아가면서 > 이수현씨 기념 방일연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10) - 최종발표회 (2/20~22) (3) | 2018.02.11 |
---|---|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9-下) - 자유행동일(나라답사) (2/19) (0) | 2018.02.11 |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8) - 도쿄연수여행 3일차(2/18) (0) | 2018.02.11 |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7) - 도쿄연수여행 1,2일차(2/16-2/17) (0) | 2018.02.11 |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6) - 간사이센터에서 숨고르기(2/14-2/15)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