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10) - 최종발표회 (2/20~22)
#2월 20일, 발표회 준비
이제 우리가 해야 할 행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최종발표회와, 그를 준비하는 일. 아침에 히로카가 선생님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일깨워 주셨다. 우리는 이 날 오전까지는 우리가 할 발표의 형식, 그리고 발표에서 말할 내용, 발표 중 사용할 PPT를 확정해서 센터 쪽에 제출해야 했다. 앞서 6편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일본과 한국 학생의 하루동안의 생활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무대를 둘로 나누고 각 편에서 한국과 일본의 일상중 각 에피소드들을 연기하는 연극을 하기로 했다. 연극에는 아침 일어날 때부터 저녁에 잠에 들 때까지, 총 6개의 에피소드가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1. 아침에 화장실 사용, 2.학교 수업중 풍경, 3.학교에서 점심시간, 4.귀가하는 전철 안, 5.편의점, 그리고 6. 집에 돌아와 TV를 보는 장면이 그것이었다. 5명의 조원중 유신이가 내레이션, 시현이와 내가 일본인 역할, 은수와 윤호가 한국인 역할을 맡도록, 적절하게 역할을 배분했다.
발표 제목과 팀 이름도 정했다. 이 때가 한국에서 한참 '너의 이름은'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기에 제목은 '너의 일상은(君の日常は)', 팀 이름도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인 '무스비'로 했다. B조 였기에, 일본어로는 結び가 아닌, 結B로 표기했다. 다른 조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조 이름도 같이 들어가도록 이름을 정했다. 그렇게 PPT와 스크립트가 정해졌다. 남은 것은 이를 외우고, 현실감 있게 연극하는 것일 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행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최종발표회와, 그를 준비하는 일. 아침에 히로카가 선생님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시 일깨워 주셨다. 우리는 이 날 오전까지는 우리가 할 발표의 형식, 그리고 발표에서 말할 내용, 발표 중 사용할 PPT를 확정해서 센터 쪽에 제출해야 했다. 앞서 6편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일본과 한국 학생의 하루동안의 생활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무대를 둘로 나누고 각 편에서 한국과 일본의 일상중 각 에피소드들을 연기하는 연극을 하기로 했다. 연극에는 아침 일어날 때부터 저녁에 잠에 들 때까지, 총 6개의 에피소드가 들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1. 아침에 화장실 사용, 2.학교 수업중 풍경, 3.학교에서 점심시간, 4.귀가하는 전철 안, 5.편의점, 그리고 6. 집에 돌아와 TV를 보는 장면이 그것이었다. 5명의 조원중 유신이가 내레이션, 시현이와 내가 일본인 역할, 은수와 윤호가 한국인 역할을 맡도록, 적절하게 역할을 배분했다.
발표 제목과 팀 이름도 정했다. 이 때가 한국에서 한참 '너의 이름은'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기에 제목은 '너의 일상은(君の日常は)', 팀 이름도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인 '무스비'로 했다. B조 였기에, 일본어로는 結び가 아닌, 結B로 표기했다. 다른 조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조 이름도 같이 들어가도록 이름을 정했다. 그렇게 PPT와 스크립트가 정해졌다. 남은 것은 이를 외우고, 현실감 있게 연극하는 것일 뿐.
떠나기 전 찍은 센터 주변 풍경
#마지막 인삿말 준비
나는 한 가지 역할이 더 남아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쓰는 것. 연극에서 시작할 때의 인사는 시현이가, 마지막 인사는 내가 할 예정이었다. 우리가 발표 중에서 마지막 순서여서 내가 사실상 가장 마지막 인사도 겸해서 하는 것이란 것을 깨닫고 나니 어깨가 살짝 무거웠다.
처음에 내가 구상했던 글은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서로 간의 차이는 있으니 이것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의 우열은 가릴 수 없다, 앞으로 일본과 긍정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나도 구상하면서 적절한 내용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한국과 일본 양측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내용이기에 어떤 내용이 적절할지, 또 서로를 자극시키지 않을 지 고민하다 보니 다소 두루뭉술한 내용이 나온 느낌이었다.
이 글을 읽어 본 오오니시 선생님도 그런 내 글의 분위기를 읽으셨던 것 같다. 글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고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하시면서 나 자신의 체험을 첨가해 나 자신부터 가깝게 느낄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고민하다 내가 그래도 연수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활동으로 여긴 홈스테이를 언급하기로 했다. 어차피 청중도 우리가 교류회와 홈스테이를 같이 진행한 사노고등학교의 선생님들과 홈스테이 파트너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홈스테이를 통해서 일본인들과 깊은 수준의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소재로 삼아,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발견했지만, 이 차이는 꾸준한 교류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썼다. 또,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일관계에 존재하는 갈등들이 우리 학생들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가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마무리를 맺었다. 마침 우리 조의 이름도 '인연'을 뜻하는 '무스비(結び)' 였고, 우리가 보고 온 이수현씨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도 '가교'를 뜻하는 '카케하시(かけはし)'였기에 그 단어들도 적절히 배치해 글과 연수, 발표간의 연관성을 살리고자 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오오니시 선생님도 좋다고 동의해 주셨고, 이를 끝으로 완성된 대사집을 가지고 우리는 연습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가지 역할이 더 남아 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쓰는 것. 연극에서 시작할 때의 인사는 시현이가, 마지막 인사는 내가 할 예정이었다. 우리가 발표 중에서 마지막 순서여서 내가 사실상 가장 마지막 인사도 겸해서 하는 것이란 것을 깨닫고 나니 어깨가 살짝 무거웠다.
처음에 내가 구상했던 글은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이었다. 서로 간의 차이는 있으니 이것은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의 우열은 가릴 수 없다, 앞으로 일본과 긍정적인 관계가 되기를 바란다... 나도 구상하면서 적절한 내용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는데 한국과 일본 양측의 사람들이 모두 들을 내용이기에 어떤 내용이 적절할지, 또 서로를 자극시키지 않을 지 고민하다 보니 다소 두루뭉술한 내용이 나온 느낌이었다.
이 글을 읽어 본 오오니시 선생님도 그런 내 글의 분위기를 읽으셨던 것 같다. 글이 가깝게 다가오지 않고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라고 하시면서 나 자신의 체험을 첨가해 나 자신부터 가깝게 느낄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더 고민하다 내가 그래도 연수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활동으로 여긴 홈스테이를 언급하기로 했다. 어차피 청중도 우리가 교류회와 홈스테이를 같이 진행한 사노고등학교의 선생님들과 홈스테이 파트너 학생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홈스테이를 통해서 일본인들과 깊은 수준의 교류를 할 수 있었던 것을 소재로 삼아, 이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이를 발견했지만, 이 차이는 꾸준한 교류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썼다. 또,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일관계에 존재하는 갈등들이 우리 학생들을 비롯한 새로운 세대가 해결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마무리를 맺었다. 마침 우리 조의 이름도 '인연'을 뜻하는 '무스비(結び)' 였고, 우리가 보고 온 이수현씨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도 '가교'를 뜻하는 '카케하시(かけはし)'였기에 그 단어들도 적절히 배치해 글과 연수, 발표간의 연관성을 살리고자 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오오니시 선생님도 좋다고 동의해 주셨고, 이를 끝으로 완성된 대사집을 가지고 우리는 연습하기 시작했다.
#단체 노래 준비
우리 단원 20명 전체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도 있었다. 마지막 발표회에서 다 함께 부를 노래를 정하는 것이었다. 일본어로 되어 모두가 부를 노래 한 곡, 그리고 한국어로 된 노래 한 곡. 한국어로 된 노래는 모두가 부르지는 않아도 되었다. 여러가지 곡 제안들이 오갔지만, 결국 일본어 노래는 MONGOL800의 '小さな恋のうた(자그만한 사랑의 노래)'로, 한국어 노래는 015B의 '이젠 안녕'으로 정해졌다. 한국어 노래는 무대 스크린에 영상으로 자막을 띄우는 것으로 오시는 일본 분들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하기로 했다.
연습은 이 날 저녁 센터에 딸린 노래방에서 행해졌다. 평소에도 센터에 있던 날이면 찾아가서 모여 온갖 노래를 부르고 했던 곳이었다. 이때는 서로 파트를 나누고, 가사를 외워야 했던지라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반복해서 부르기는 했지만, 그런 식으로 모여서 한 노래를 준비하니 평소에 한두명씩 노래를 부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小さな恋のうた는 이전에 모르던 노래였는데 가사가 너무 예뻤다. '小さな島のあなたのもとへ(작은 섬의 당신 곁에)'와 '夢ならば覚めないで(꿈이라면 깨지 말아줘)' 라는 가사가 특히, 이 연수로 일본에 와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던 내게 공감되는 부분이었다. 다들, 그렇게 연습하고 나서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렸다고 하기도 하는데, 나는 노래가 좋아서 연수에 갔다와서도 한참동안 계속해서 이 노래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료식에서 부른 '이젠 안녕' (촬영: 간사이 센터)
#2월 21일 오전, 정리 OT & 앙케이트 및 의견수렴
다음 날 아침부터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발표회가 꽤 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이어서 필요한 정리는 이 날 다 해놓아야 했다. 그동안 센터쯕에서 찍어준 사진들도 전달받고, 센터에서 개인적으로 빌린 물품이 있으면 반납하는 등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내내 교복을 입어야 했으므로, 나는 떠나는 날 입을 옷 빼고는 다 정리해 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엔 도서관에 모여 우리의 연수를 평가하는 간단한 앙케이트를 작성하고, 그동안 우리를 맡아주셨던 선생님 네 분 이 각자 단원 5명씩을 맡아서 1:1 방식으로 연수에 관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가졌다. 나는 오오니시 선생님이었다. 비교적 오오니시 선생님이 쿨한 성격이라 연수 중에서도 그렇게 어색함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선생님이어서 상담할 떄도 편한 느낌으로 할 수 있었다. 연수 중에 좋았다고 느낀 점, 불편했던 점, 기억에 남는 점 등을 질문했고, 나도 그에 맞춰서 답을 했던 것 같다. 나머지 질문 내용에 대한 답변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기억에 남는 점이라 하면 역시 그래도 홈스테이와 고등학생 교류회라고 답했던 것 같다.
이후 남은 시간은 연습과 리허설의 연속이었다. 몇번 연습해서 몸에 익힌 다음에는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이후에 있을 발표회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홀에 도울 일이 있을까 싶어 내려가 봤지만, 센터 쪽 분들이 이미 다 셋팅을 해놨던 것으로 기억난다. 학교에서는 힘쓸 일이 있으면 학생들이 동원되는 게 몸에 익어서 그런가 오히려 그런 일들을 안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날 저녁 발표회가 꽤 늦게까지 이어질 예정이어서 필요한 정리는 이 날 다 해놓아야 했다. 그동안 센터쯕에서 찍어준 사진들도 전달받고, 센터에서 개인적으로 빌린 물품이 있으면 반납하는 등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내내 교복을 입어야 했으므로, 나는 떠나는 날 입을 옷 빼고는 다 정리해 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엔 도서관에 모여 우리의 연수를 평가하는 간단한 앙케이트를 작성하고, 그동안 우리를 맡아주셨던 선생님 네 분 이 각자 단원 5명씩을 맡아서 1:1 방식으로 연수에 관해서 물어보고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가졌다. 나는 오오니시 선생님이었다. 비교적 오오니시 선생님이 쿨한 성격이라 연수 중에서도 그렇게 어색함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선생님이어서 상담할 떄도 편한 느낌으로 할 수 있었다. 연수 중에 좋았다고 느낀 점, 불편했던 점, 기억에 남는 점 등을 질문했고, 나도 그에 맞춰서 답을 했던 것 같다. 나머지 질문 내용에 대한 답변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기억에 남는 점이라 하면 역시 그래도 홈스테이와 고등학생 교류회라고 답했던 것 같다.
이후 남은 시간은 연습과 리허설의 연속이었다. 몇번 연습해서 몸에 익힌 다음에는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이후에 있을 발표회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홀에 도울 일이 있을까 싶어 내려가 봤지만, 센터 쪽 분들이 이미 다 셋팅을 해놨던 것으로 기억난다. 학교에서는 힘쓸 일이 있으면 학생들이 동원되는 게 몸에 익어서 그런가 오히려 그런 일들을 안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발표회
어쨌거나 4시가 되어 우리의 홈스테이 파트너들과 가족분들, 사노고의 선생님들이 다 도착하자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M과 E도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시간으로 미루고 간단한 인사만 나눈 뒤 발표회 대기 위치로 들어갔다. 몇 명은 사회자로 앞에 서 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각 발표 이후에 있을 질문을 위해서 좌우 양쪽 벽에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가운데, A로를 시작으로 C,D,B의 순서로 발표를 시작했다. A조(팀명 Ace)에서는 '가까운 나라, 다른 학교'라는 제목으로 양국의 학교생활에서의 차이를 우리와 비슷하게 상황극으로 발표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종이 치자마자 뛰어나가는 것은, 우연히도 마지막에 발표하게 될 우리의 상황극과도 겹치는 부분이었다. 발표 이전에 서로의 발표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미처 조율이 안 된 부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청중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우리는 우리의 발표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C조(팀명 컬러풀)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를 번역한 것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우리가 연수를 하면서 다녀온 교토, 도쿄 같은 지역의 명소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D조는 Dangerous란 팀 이름으로 그에 걸맞게 발표 제목도 '야바뉴스'(야바이 - 사전적 뜻은 위험한)라고 정했다. 발표도 뉴스를 테마로 해서 앵커가 사회자 역할을 하고, 우리가 다녀온 각 지역과 장소에 통신원이 나가서 소식을 전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보면 A조와 B조가 살짝 겹치고, C조와 D조의 내용이 살짝 겹쳤던 셈이다. 물론 서로 베껴왔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방식의 좀 더 다양한 주제가 발표되었더라면 좋을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발표 순서가 우리 조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자 아침에 화장실에 가는 순서로 시작했다. 차이는 한국은 변기와 나머지 세면대 등이 다 한 곳에 있어서 용변을 본 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것이 가능하지만, 일본은 두 개가 따로 떨어져 있어서, 변기에 자체적으로 물을 내리면 같이 물이 나오는 호스 같은 구조가 변기에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우리 조원 모두가 홈스테이를 하면서 상당히 인상깊게 받아들인 점이어서 발표의 첫 장면으로 들어갔다. 두번째는 수업 중 장면. 여기에서 차이는 일본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쓰는 장면과 한국 학생이 졸리니까 뒤로 가서 스탠딩 책상에 서서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교실에서 주요교과 수업참관을 한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반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에는 서서 수업을 듣거나 한다는 개념이 없는 모양으로 (사실 한국이 특이한 케이스일 것이다), 그 점을 소개하기 위해서 한국학생이 스탠딩 책상에서 공부하는 부분을 넣었다.
세번째와 네번째 장면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세번째는 점심시간, 이 부분은 역시 종이 치지마자 뛰어나가는 건 양국에서 똑같다는, 어찌 보면 만국 공통일 사실을 넣게 되었다. 학생들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고 무대에서 뛰어내려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아마 임팩트가 있어서 다른 조에서도 이 장면을 넣었지 않을까 싶다. 네번째는, 학교에서 돌아가는 전철 풍경이었다. 물론, 우리는 야간자습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도 수도권 지방은 안 하는 점을 생각해서 이 장면을 선택했다. 일본에 다녀보면서 한국보다는 전철 내 독서인구가 많있지만, 상당수가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일본도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모두 전철 안에서는 말 한마디 휴대폰을 보고 있는 장면을 넣어서 보여주고자 했다.
다섯번째 장면은 편의점. 편의점은 물론이고 일본의 다른 형태의 가게에도 가면 계산할 때 돈을 내면 '얼마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또 '얼마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한국에 비해서 현금 결제 비율이 더 높아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도입한 제도로 보이는데, 또 친절하다는 인상까지 더해줘서 비교적 무뚝뚝한 한국에 비해서 이 부분은 부러운 점이었다. 또 다른 점은 음식을 데우는 방식. 한국에서는 전자레인지가 셀프 서비스이지만 일본에서는 직원이 데워준다. 그런 차이점들이 다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 장면은 집에 와서 TV를 보는 것. 일본 방송을 보면 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도중에 끊고 그 사이에 광고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비록 한국에서도 케이블, 종편이 이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지상파에서도 드라마 등에서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가 무얼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장 체험하기 쉬운 TV를 사례로 넣었다. 이후 내가 고심해서 적은 마지막 인삿말을 발표하며 무대에서 내려섰다. 반응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마 홈스테이의 사례를 넣어서 당사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다.
어쨌거나 4시가 되어 우리의 홈스테이 파트너들과 가족분들, 사노고의 선생님들이 다 도착하자 발표회가 시작되었다. M과 E도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녁시간으로 미루고 간단한 인사만 나눈 뒤 발표회 대기 위치로 들어갔다. 몇 명은 사회자로 앞에 서 있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은 각 발표 이후에 있을 질문을 위해서 좌우 양쪽 벽에 마이크를 들고 서 있는 가운데, A로를 시작으로 C,D,B의 순서로 발표를 시작했다. A조(팀명 Ace)에서는 '가까운 나라, 다른 학교'라는 제목으로 양국의 학교생활에서의 차이를 우리와 비슷하게 상황극으로 발표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종이 치자마자 뛰어나가는 것은, 우연히도 마지막에 발표하게 될 우리의 상황극과도 겹치는 부분이었다. 발표 이전에 서로의 발표 내용을 몰랐기 때문에 미처 조율이 안 된 부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청중이 이해해 주시리라 믿고 우리는 우리의 발표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C조(팀명 컬러풀)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를 번역한 것 같은 제목으로 발표했다. 내용은 우리가 연수를 하면서 다녀온 교토, 도쿄 같은 지역의 명소들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D조는 Dangerous란 팀 이름으로 그에 걸맞게 발표 제목도 '야바뉴스'(야바이 - 사전적 뜻은 위험한)라고 정했다. 발표도 뉴스를 테마로 해서 앵커가 사회자 역할을 하고, 우리가 다녀온 각 지역과 장소에 통신원이 나가서 소식을 전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보면 A조와 B조가 살짝 겹치고, C조와 D조의 내용이 살짝 겹쳤던 셈이다. 물론 서로 베껴왔거나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좀 더 다양한 방식의 좀 더 다양한 주제가 발표되었더라면 좋을뻔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발표 순서가 우리 조였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자 아침에 화장실에 가는 순서로 시작했다. 차이는 한국은 변기와 나머지 세면대 등이 다 한 곳에 있어서 용변을 본 뒤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것이 가능하지만, 일본은 두 개가 따로 떨어져 있어서, 변기에 자체적으로 물을 내리면 같이 물이 나오는 호스 같은 구조가 변기에 추가되어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우리 조원 모두가 홈스테이를 하면서 상당히 인상깊게 받아들인 점이어서 발표의 첫 장면으로 들어갔다. 두번째는 수업 중 장면. 여기에서 차이는 일본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쓰는 장면과 한국 학생이 졸리니까 뒤로 가서 스탠딩 책상에 서서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학생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교실에서 주요교과 수업참관을 한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일본에서는 반말을 쓰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반면 일본에는 서서 수업을 듣거나 한다는 개념이 없는 모양으로 (사실 한국이 특이한 케이스일 것이다), 그 점을 소개하기 위해서 한국학생이 스탠딩 책상에서 공부하는 부분을 넣었다.
세번째와 네번째 장면은 두 나라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세번째는 점심시간, 이 부분은 역시 종이 치지마자 뛰어나가는 건 양국에서 똑같다는, 어찌 보면 만국 공통일 사실을 넣게 되었다. 학생들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장면이고 무대에서 뛰어내려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아마 임팩트가 있어서 다른 조에서도 이 장면을 넣었지 않을까 싶다. 네번째는, 학교에서 돌아가는 전철 풍경이었다. 물론, 우리는 야간자습이 있었지만, 한국에서도 수도권 지방은 안 하는 점을 생각해서 이 장면을 선택했다. 일본에 다녀보면서 한국보다는 전철 내 독서인구가 많있지만, 상당수가 스마트폰 등의 전자기기를 들여다 보고 있는 것으로 일본도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한일 양국의 학생들이 모두 전철 안에서는 말 한마디 휴대폰을 보고 있는 장면을 넣어서 보여주고자 했다.
다섯번째 장면은 편의점. 편의점은 물론이고 일본의 다른 형태의 가게에도 가면 계산할 때 돈을 내면 '얼마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또 '얼마 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한국에 비해서 현금 결제 비율이 더 높아서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 도입한 제도로 보이는데, 또 친절하다는 인상까지 더해줘서 비교적 무뚝뚝한 한국에 비해서 이 부분은 부러운 점이었다. 또 다른 점은 음식을 데우는 방식. 한국에서는 전자레인지가 셀프 서비스이지만 일본에서는 직원이 데워준다. 그런 차이점들이 다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 마지막 장면은 집에 와서 TV를 보는 것. 일본 방송을 보면 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도중에 끊고 그 사이에 광고를 내보내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비록 한국에서도 케이블, 종편이 이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해서 현재는 지상파에서도 드라마 등에서 사용하는 방법이지만, 집에 돌아와서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차이가 무얼까 하고 생각하다가 가장 체험하기 쉬운 TV를 사례로 넣었다. 이후 내가 고심해서 적은 마지막 인삿말을 발표하며 무대에서 내려섰다. 반응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아마 홈스테이의 사례를 넣어서 당사자들이 좀 더 가깝게 느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다.
마지막 인삿말을 발표하는 나 (촬영: 간사이 센터)
#수료식 및 저녁
이후 순서는 수료식이었다. 홀에 놓여있던 의자들을 치우고 탁자를 설치한 뒤, 이후에 우리가 이용하게 될 뷔페가 홀 밖에 놓여지고 나서 식이 재개되었다. 우리는 모두 일렬로 서서 한 명씩 앞으로 나아가 간사이 센터의 아카기 소장님이 주시는 수료증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소장님, 사노고 교장님, 단장인 영준이, 마지막으로 부소장님으로 이어지는 인삿말들이 있었다. 내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사노고 교장님의 인삿말. 내가 마지막 인사에서 우리 새로운 세대가 한일 관계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한 부분을 인용하시면서 그 자리에 참석한 학생 모두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다. 또, 이후에 저녁시간에 이야기를 잠시 나누게 된 사노고의 다른 선생님도 내 말에 공감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렇게 내 말을, 다른 분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더욱 그 말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내게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내가 하는 일이 그 방향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후 우리는 저녁시간을 가졌다. 준비해 둔 뷔페에서 각자 음식을 골라먹는 방식이었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음식이 놓여있었다. 나는 영준이, M, E와 함께 같은 테이블에서 먹었다. 상남자(?) 영준이가 4명이 앉을 의자를 건이 일행으로부터 탈취해 오려는 시도를 제지하고 직접 의자를 가져와서 서로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M과 E야 둘 다 대입도 끝나고 대학도 정해져서 백수생활을 하느라 큰 뉴스는 없었다지만, 우리는 헤어진 지 고작 열흘도 안 되어서 겪은 일들이 꽤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말을 많이 한 것 같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일본에서 한 경험들을 이야기하면 M과 E가 자신의 경험을 넣어서 맞장구를 쳐주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내가 전날, 나라에 가서 4만보를 걸었다고 하니까 놀라는 반응도 재미있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시간은 흘러가서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 오면, 한국에 오면 서로 꼭 들러보라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이후 정리가 끝나고 나서는 마지막으로 모두가 센터 노래방에 모여서 놀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자 자러 다들 방에 하나둘씩 돌아가며 마지막 날의 밤이 끝났다.
마지막으로... (촬영: 간사이 센터)
#2월 22일, 떠나는 날
이 날은 아침을 먹고 로비에 집합했다. 다들 15일간 머무르며 구한 가지각색의 기념품들(과자 만화책 등...)을 닫히지 않는 캐리어에 쑤서넣느라, 무게를 맞추느라 고생하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배웅해 주시는 오오니시 선생님과 히로카가 선생님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타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 나와 영준이는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M과 E가 배웅하러 나와 준 것. 전날 헤어질 때 배웅해 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로 나와줄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집이 공항에서 가깝고 시간이 많다고 해도 실제로 배웅하러 나와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슬프게도 바로 수속을 하고 터미널로 들어가야 해서 길게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M과 E에게 정말로 마지막인 작별인사로 고하고 우리는 수속하는 줄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짐을 줄이기 위해 옷을 여러 겹 껴입으란 내 충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정말로 몇 겹의 옷을 입고 나온 K양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며 나는 터미널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듯 하다.
이후 1시간 반을 걸려 인천으로 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본에 갔다온 것이 맞나 느낄 만큼 헤어짐은 빨랐다. 그리고 다시 2시간의 대기 이후 포항행 KTX를 탔다. 내려오는 열차 속에서 우리 학교의 자습이 드디어 자율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또 내가 이제 고3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15일간의 이수현씨 기념 방일연수는 끝이 났다.
이 날은 아침을 먹고 로비에 집합했다. 다들 15일간 머무르며 구한 가지각색의 기념품들(과자 만화책 등...)을 닫히지 않는 캐리어에 쑤서넣느라, 무게를 맞추느라 고생하는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우리는 배웅해 주시는 오오니시 선생님과 히로카가 선생님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타 간사이 공항으로 향했다.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 나와 영준이는 설마가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M과 E가 배웅하러 나와 준 것. 전날 헤어질 때 배웅해 준다는 말은 들었지만, 정말로 나와줄 줄은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집이 공항에서 가깝고 시간이 많다고 해도 실제로 배웅하러 나와주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슬프게도 바로 수속을 하고 터미널로 들어가야 해서 길게 이야기는 못 나눴지만, 그래도 너무 감사한 순간이었다. M과 E에게 정말로 마지막인 작별인사로 고하고 우리는 수속하는 줄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짐을 줄이기 위해 옷을 여러 겹 껴입으란 내 충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정말로 몇 겹의 옷을 입고 나온 K양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미안함을 느끼며 나는 터미널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던 듯 하다.
이후 1시간 반을 걸려 인천으로 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본에 갔다온 것이 맞나 느낄 만큼 헤어짐은 빨랐다. 그리고 다시 2시간의 대기 이후 포항행 KTX를 탔다. 내려오는 열차 속에서 우리 학교의 자습이 드디어 자율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며, 또 내가 이제 고3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15일간의 이수현씨 기념 방일연수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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