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4-下) - 사노고 방문 & 홈스테이(2/10-2/11)
#2월 11일, 오사카 시내 탐방
다음 날 일어나서는 M의 친구 E와 E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영준이, 그렇게 넷이서 오사카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가기 전 아침은 일본에서 1월 1일 아침에 먹는 떡국 비슷한 음식인 오조니(お雑煮)였다. 2월이었지만, 일본 전통 음식을 먹게 하고 싶다고 해서 M의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이었기에 정말 감사했다. 오조니 자체는 한국식 떡국과는 꽤 달라서 가래떡 대신에 찰떡이 들어갔고, 닭을 넣어서 우린 육수가 국물로 들어갔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방 안에 장식되어 있던 히나인형 앞에서 M의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3월이 다가오니 장식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명절 이외에는 전통 행사나 24절기 등을 잘 지키지 않는 편인데 일본에서는 다들 전통 일정도 지키면서 즐긴다는 점이 부러운 점이었다. 이후, 냉동식품 회사에 다니신다는 M의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것을 배웅하고 우리도 나갈 준비를 했다. 집을 나오면서는 내 쪽에서 드리는 선물로 한국에서 챙겨온 각종 김을 드렸다. 돌김, 맛김, 구운김... 일본인 선물로는 김이 가장 최고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는 M의 친구 E와 E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던 영준이, 그렇게 넷이서 오사카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가기 전 아침은 일본에서 1월 1일 아침에 먹는 떡국 비슷한 음식인 오조니(お雑煮)였다. 2월이었지만, 일본 전통 음식을 먹게 하고 싶다고 해서 M의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이었기에 정말 감사했다. 오조니 자체는 한국식 떡국과는 꽤 달라서 가래떡 대신에 찰떡이 들어갔고, 닭을 넣어서 우린 육수가 국물로 들어갔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밥을 먹고 나서 방 안에 장식되어 있던 히나인형 앞에서 M의 가족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3월이 다가오니 장식해 놓은 것이라고 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서 내가 아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명절 이외에는 전통 행사나 24절기 등을 잘 지키지 않는 편인데 일본에서는 다들 전통 일정도 지키면서 즐긴다는 점이 부러운 점이었다. 이후, 냉동식품 회사에 다니신다는 M의 아버지가 출근하시는 것을 배웅하고 우리도 나갈 준비를 했다. 집을 나오면서는 내 쪽에서 드리는 선물로 한국에서 챙겨온 각종 김을 드렸다. 돌김, 맛김, 구운김... 일본인 선물로는 김이 가장 최고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이날 먹은 아침식사 오른쪽 위가 오조니
E와 영준이 쪽과 합류하기 위해 역에 가기 이전, M이 자기네 동네 신사에 들렀다 가자고 했다. 신사 자체에는 크게 특별할 것이 없었지만, 학업과 관련된 신이 모셔져 있다고 해서 같이 참배를 가게 되었다. 본전에서 참배를 한 뒤, 신사 마당 한쪽에 따로 모셔져 있는 돌로 향했다. 비석만한 크기에, 구멍이 파인 돌이었는데, 그 구멍의 크기가 사람의 머리가 딱 맞을 만한 크기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앞에서 기도를 하고 그 구멍에 머리를 넣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당연히, 수험생인 나도 M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다. 그리고 나서 그 옆에 보니 합격 기원 에마를 거는 곳이 있었다. M도 그곳에 자신이 대입 시험을 치기 전에 에마를 건 뒤 시험을 치러 갔더니 붙었다고 했다. 나는 에마까지는 걸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 혼자 여행을 왔다면 절대 몰랐을 장소에, 그것도 나에게 맞춤형인 곳까지 데려가 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M의 집 앞 이치오카 신사에서
##오사카 덴만궁
이후 E일행과 역에서 만나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오사카 덴만궁이었다. 오사카 덴만궁은, 다른 일본 전국의 모든 덴만궁과 같이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셔놓은 곳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현역 수험생인 우리를 위해서 가는 순서인 듯 했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참배했다. 일본에서 만난 친구들의 그 모든 정성 덕에 수험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때가 2월 중순이라 아직 추웠는데, 신사 참배 할 때 입구에서 손을 씻는 것을 미리 생각해놓을 수 있을 우리가 아니었기에 손수건을 준비해 우리에게도 일일이 권해 준 M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참고로 이 날 이용한 교통수단은 대부분 지하철이었는데, M이 추천해 준 '인조이 에코 카드'라는 일종의 당일 시영지하철 자유이용권을 사용했다. 한 장에 600엔이었는데, 시내에 진입/귀환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내내 시영지하철로 다녔으니 덕분에 교통비도 절약한 셈이 되었다.
이후 E일행과 역에서 만나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이 오사카 덴만궁이었다. 오사카 덴만궁은, 다른 일본 전국의 모든 덴만궁과 같이 학문의 신 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셔놓은 곳이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현역 수험생인 우리를 위해서 가는 순서인 듯 했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게 참배했다. 일본에서 만난 친구들의 그 모든 정성 덕에 수험생활을 잘 이겨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때가 2월 중순이라 아직 추웠는데, 신사 참배 할 때 입구에서 손을 씻는 것을 미리 생각해놓을 수 있을 우리가 아니었기에 손수건을 준비해 우리에게도 일일이 권해 준 M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참고로 이 날 이용한 교통수단은 대부분 지하철이었는데, M이 추천해 준 '인조이 에코 카드'라는 일종의 당일 시영지하철 자유이용권을 사용했다. 한 장에 600엔이었는데, 시내에 진입/귀환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내내 시영지하철로 다녔으니 덕분에 교통비도 절약한 셈이 되었다.
##오사카 주택박물관
이후 우리는 오사카 주택박물관으로 향했다. M이 말해주길, 에도시대 오사카의 거리를 실내에 재현해 놓았고, 유카타를 빌려 입고 그 안에 돌아다닐 수도 있는 곳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2년 전에 같이 이수현씨 방일연수를 통해 홈스테이를 하게 된 분도 이곳에 같이 왔었다고 했다. 나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오사카 주유 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어서 특히 한국인이 매우, 매우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였다. 입장부터 줄을 서서 들어갔는데 이미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통 나와 영준이가 일본인으로 착각당할 텐데, 같이 간 M과 E가 그곳 점원으로부터 한국인으로 착각당할 정도였다.
먼저 에도시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 후반까지 각종 생활상과 집 안에서 쓰인 가구 및 도구를 전시해 놓은 구역으로 들어갔다. 부엌간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고무다라이(당연하지만, 일본인들도 다라이를 다라이라고 불렀다.)까지, 또 60년대 이자나기 경기당시의 신(新)삼종신기라는 에어컨과 컬러TV(다른 하나는 자동차다)도 당시의 제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곳에 가면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예전 교과서가 으레 있듯이, 이곳에도 예전 일본 교과서가 있었다. 읽으려고 하니 표기법이 지금 쓰는 일본어와는 조금 달랐다. M과 E에게도 물어보니 실제로 표기법이 조금 달라서 자신들도 학교에서 따로 배웠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가 근대국어로 된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그런 정도의 차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시대의 일본어도 배우면 그때의 일문학 작품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째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국의 한복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은 이때 한복을 지칭하면서 'チマチョゴリ(치마저고리)'라는 표현을 M과 E가 썼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는 두루마기 같은 일반 한복과 치마저고리를 잘 구분 못해서 그런 말을 쓰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사실로는 오사카 인근에 조총련계 재일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이들이 운영하는 조선학교에서 치마저고리를 여학생 교복으로 사용하다 보니 일본인들이 한복류 의상 전체를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韓服'이라고 부르는 경우와 'チマチョゴリ'라고 부르는 경우가 섞여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되는 용어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근현대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한 동시에 씁쓸했다.
재현 거리에 들어가니 아직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거리 재현은 정말 잘 해 놔서,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일본 전통 놀이나, 상점에서 회계를 보는 등 당시의 문화를 몇 가지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유카타를 입는 체험은 추가요금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몰려서 한 시간 뒤로 예약을 해야 했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다시 오사카덴만궁 쪽으로 가서 인근 텐진바시 시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산 것은 오코노미야키. 관서지방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에 오코노미야키가 있는데 그래도 한번은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와 영준이는 오코노미야키를 샀고, M과 E는 그냥 우동을 사서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마침 오사카덴만궁에서 행사를 하고 있어서 길거리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장소들을 경내에 많이 마련해 놓고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오코노미야키 자체는 그렇게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빈대떡 일본판이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한 비유일 것 같다.
박물관으로 돌아와 유카타를 입고 나온 후에는 더더욱 에도시대 일본에 온 기분을 느껴보...려 했지만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박물관을 묘사한 E의 말을 빌리자면 "에도시대 한국에 왔는데 건물과 옷만 일본 것인 동네, 혹은 당시의 일본인데 공용어가 한국어인 동네에 온 거 같"았다. 심지어 우리 4명의 사진을 찍을 때 옆에 지나가던 분께 일본어가 아니고 한국어로 부탁해서 찍었으니 말 다 했다.
이후 우리는 오사카 주택박물관으로 향했다. M이 말해주길, 에도시대 오사카의 거리를 실내에 재현해 놓았고, 유카타를 빌려 입고 그 안에 돌아다닐 수도 있는 곳이라고 했다. 또, 자신이 2년 전에 같이 이수현씨 방일연수를 통해 홈스테이를 하게 된 분도 이곳에 같이 왔었다고 했다. 나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오사카 주유 패스로 들어갈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어서 특히 한국인이 매우, 매우 많이 오는 곳 중 하나였다. 입장부터 줄을 서서 들어갔는데 이미 전후좌우 모든 곳에서 한국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통 나와 영준이가 일본인으로 착각당할 텐데, 같이 간 M과 E가 그곳 점원으로부터 한국인으로 착각당할 정도였다.
먼저 에도시대부터 시작해서 20세기 후반까지 각종 생활상과 집 안에서 쓰인 가구 및 도구를 전시해 놓은 구역으로 들어갔다. 부엌간의 모습부터 시작해서 고무다라이(당연하지만, 일본인들도 다라이를 다라이라고 불렀다.)까지, 또 60년대 이자나기 경기당시의 신(新)삼종신기라는 에어컨과 컬러TV(다른 하나는 자동차다)도 당시의 제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곳에 가면 철수와 영희가 나오는 예전 교과서가 으레 있듯이, 이곳에도 예전 일본 교과서가 있었다. 읽으려고 하니 표기법이 지금 쓰는 일본어와는 조금 달랐다. M과 E에게도 물어보니 실제로 표기법이 조금 달라서 자신들도 학교에서 따로 배웠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가 근대국어로 된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그런 정도의 차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시대의 일본어도 배우면 그때의 일문학 작품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째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한국의 한복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점은 이때 한복을 지칭하면서 'チマチョゴリ(치마저고리)'라는 표현을 M과 E가 썼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는 두루마기 같은 일반 한복과 치마저고리를 잘 구분 못해서 그런 말을 쓰나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사실로는 오사카 인근에 조총련계 재일조선인들이 많이 살고, 이들이 운영하는 조선학교에서 치마저고리를 여학생 교복으로 사용하다 보니 일본인들이 한복류 의상 전체를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韓服'이라고 부르는 경우와 'チマチョゴリ'라고 부르는 경우가 섞여 있다고 했다. 이와 같이,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되는 용어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복잡한 근현대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한 동시에 씁쓸했다.
재현 거리에 들어가니 아직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거리 재현은 정말 잘 해 놔서, 건물 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일본 전통 놀이나, 상점에서 회계를 보는 등 당시의 문화를 몇 가지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있었다. 유카타를 입는 체험은 추가요금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몰려서 한 시간 뒤로 예약을 해야 했다. 그 시간동안 우리는 다시 오사카덴만궁 쪽으로 가서 인근 텐진바시 시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산 것은 오코노미야키. 관서지방에서 유명한 음식 중 하나에 오코노미야키가 있는데 그래도 한번은 먹어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나와 영준이는 오코노미야키를 샀고, M과 E는 그냥 우동을 사서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마침 오사카덴만궁에서 행사를 하고 있어서 길거리 음식들을 먹을 수 있는 장소들을 경내에 많이 마련해 놓고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오코노미야키 자체는 그렇게 내 입맛에 맞지는 않았다. 빈대떡 일본판이라고 생각하면 딱 적당한 비유일 것 같다.
박물관으로 돌아와 유카타를 입고 나온 후에는 더더욱 에도시대 일본에 온 기분을 느껴보...려 했지만 사방에서 한국어가 들려오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 박물관을 묘사한 E의 말을 빌리자면 "에도시대 한국에 왔는데 건물과 옷만 일본 것인 동네, 혹은 당시의 일본인데 공용어가 한국어인 동네에 온 거 같"았다. 심지어 우리 4명의 사진을 찍을 때 옆에 지나가던 분께 일본어가 아니고 한국어로 부탁해서 찍었으니 말 다 했다.
오사카 주택박물관에서
##우메다 & 난바
박물관을 나온 뒤에는 오사카의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인 우메다로 향했다. 우메다에서는 쇼핑가를 둘러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쇼핑에 관심이 없는 편이고, 거기서 물건도 사지 않아서 기억에 잘 남아있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후에 우리는 난바로 이동했다. 보통 난바에 가면 도톤보리의 에비스바시에 가서 글리코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 상상하지만, 오덕끼(?)가 있는 나와 영준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류의 게임을 좋아하는 E는 난바에 있는 애니메이트로 향했다. M은 이 세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밖에 나와있는 캐릭터들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중 아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면서 거기서는 오히려 내가 M이 지루하지 않게 해 주려고 했다.
난바에서 우리가 두시간을 보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 뽑기방에서 E와 영준이가 각각 한 가지 상품에 매달려 있었던 것을 들 수 있겠다. 나도 한 때 손을 댄 적 있는 아○마스 데○스테라는 게임의 한 캐릭터를 상당히 좋아했던 E가(오사카 시내로 가는 전철에서도 계속 플레이했다!) 그 게임의 피규어가 쌓여 있는 것을 포착하고는 그 피규어에 눈이 멀어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헛시도만 했으나,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등장해준 한 뽑기 고수 분의 도움으로 E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결국 피규어 하나 살 돈을 다 써서 뽑은 그 피규어 박스를 안아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옆에서 다른 피규어를 향한 자신만의 시도를 계속하던 영준이는 결국 2천엔을 날리고 말았지만...
그 곳을 나와 우리는 텐노지역으로 갔다. 원래 그곳에서는 환승만 할 예정이었지만, 긴테쓰가 세운 오사카의 새로운 랜드마크, 아베노하루카스를 둘러보려고 역 밖에도 나갔다가 그 곳에서 조금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와 영준이는 일본틱한 기념품들을 좀 샀는데, 일본 전통 문양 손수건 (手拭い)와 유카타용 엄지발가락만 분리된 양말 등이었다. 사족으로 양말은 아직도 사용처를 찾지 못해 신지 못하고 있다. 그 때 유카타도 같이 사왔어야 하는데...
박물관을 나온 뒤에는 오사카의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인 우메다로 향했다. 우메다에서는 쇼핑가를 둘러본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쇼핑에 관심이 없는 편이고, 거기서 물건도 사지 않아서 기억에 잘 남아있지 않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후에 우리는 난바로 이동했다. 보통 난바에 가면 도톤보리의 에비스바시에 가서 글리코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걸 상상하지만, 오덕끼(?)가 있는 나와 영준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비슷한 류의 게임을 좋아하는 E는 난바에 있는 애니메이트로 향했다. M은 이 세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밖에 나와있는 캐릭터들이나 애니메이션, 만화 중 아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면서 거기서는 오히려 내가 M이 지루하지 않게 해 주려고 했다.
난바에서 우리가 두시간을 보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 뽑기방에서 E와 영준이가 각각 한 가지 상품에 매달려 있었던 것을 들 수 있겠다. 나도 한 때 손을 댄 적 있는 아○마스 데○스테라는 게임의 한 캐릭터를 상당히 좋아했던 E가(오사카 시내로 가는 전철에서도 계속 플레이했다!) 그 게임의 피규어가 쌓여 있는 것을 포착하고는 그 피규어에 눈이 멀어 끊임없이 시도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헛시도만 했으나,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등장해준 한 뽑기 고수 분의 도움으로 E는 자신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었다. 결국 피규어 하나 살 돈을 다 써서 뽑은 그 피규어 박스를 안아들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그 옆에서 다른 피규어를 향한 자신만의 시도를 계속하던 영준이는 결국 2천엔을 날리고 말았지만...
그 곳을 나와 우리는 텐노지역으로 갔다. 원래 그곳에서는 환승만 할 예정이었지만, 긴테쓰가 세운 오사카의 새로운 랜드마크, 아베노하루카스를 둘러보려고 역 밖에도 나갔다가 그 곳에서 조금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나와 영준이는 일본틱한 기념품들을 좀 샀는데, 일본 전통 문양 손수건 (手拭い)와 유카타용 엄지발가락만 분리된 양말 등이었다. 사족으로 양말은 아직도 사용처를 찾지 못해 신지 못하고 있다. 그 때 유카타도 같이 사왔어야 하는데...
##다시 센터로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우리는 간사이 센터로 돌아왔다. M과 E는 린쿠타운역에서 센터로 오는 셔틀버스까지도 같이 타고 와주었다. 그리고 센터 로비에서 작별인사를 한 뒤 둘이 같이 M의 어머니 차를 타고 돌아갔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틀간의 고등학교 교류회와, 홈스테이가 보름 간의 연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다. 직접 일본 사람들과 교류하고, 집에 가서 손님으로 살아본다는 것이 다른 여행을 하면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M이라는, 일본 친구가 생겨서 이후에도 일본 갈 때마다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흔치 않은 나의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뒤에 우리는 간사이 센터로 돌아왔다. M과 E는 린쿠타운역에서 센터로 오는 셔틀버스까지도 같이 타고 와주었다. 그리고 센터 로비에서 작별인사를 한 뒤 둘이 같이 M의 어머니 차를 타고 돌아갔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틀간의 고등학교 교류회와, 홈스테이가 보름 간의 연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들이다. 직접 일본 사람들과 교류하고, 집에 가서 손님으로 살아본다는 것이 다른 여행을 하면서는 쉽사리 할 수 없는 경험이기에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그리고 M이라는, 일본 친구가 생겨서 이후에도 일본 갈 때마다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흔치 않은 나의 귀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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