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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이수현씨 기념 방일연수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3) - 연수 시작(2/8-2/9)

by Elenmar 2018. 2. 11.
제16회 이수현씨기념방일연수 후기 (3) - 연수 시작(2/8-2/9)


#2월 8일 오전, 출발
사전 OT 이후 약 보름만인 2월 8일이 출발일이었다. 아침 11시 출발이었고 집합은 그 훨씬 전이었으므로, 나는 전날 심야에 포항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버스 안에서 잠을 자고 새벽에 도착해 집합 장소에 오니, 내가 일찍 온 편이었다. 하나둘씩 도착하는 단원들을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다 되었고, 마중나오신 김영신 차장님, 카츠타 부장님, 그리고 서울문화센터에서 인턴으로 일하신다는 OB 한 분의 배웅 인사말을 듣고 출국 수속을 밟으러 터미널로 들어갔다.

첫날 센터에서 바라본 주변 동네


#2월 8일 오후, 국제교류기금 간사이 센터 체크인
출발 시간이 20분 연기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잉여로운 시간을 보내고 안전하게 간사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요시모토 선생님이 마중나와 계셨고, 우리는 버스로 간사이 공항에서 연락교만 건너면 금방인 국제교류기금 간사이 센터로 이동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니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기본 시설 설명과 체크인 절차 이후, 일정표와 우리의 태스크(연수 중 답을 찾아야 할 질문들) 리스트, 출입 카드키와 생활비를 받는 등의 순서를 거치고, 10명씩 두 조로 나뉘어 직접 센터 전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생활비를 준다는 것이 이날 가장 나에겐 놀랍고 감사한 부분이었다. 전액 지원받으며 연수를 오는데 생활비까지 지급해 준다니! 센터에는 도서관도 있었다. 센터에 지내던 다른 연수자들과 달리 센터에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연수의 특성상, 많이 이용하거나 책을 읽을 기회는 없었지만, 나는 센터에 있는 날이면 짬을 내서 들러 신문을 읽는 데 사용했다.

신문을 보다 발견한 이수현씨 관련 기사


이 날 내가 가장 예상치 못했던 것은 내 홈스테이 파트너가 여학생이라는 것이었다. 홈스테이 패밀리 소개서를 받았는데 웬걸, 여학생이었던 것이다. 사노고등학교 쪽에서 신청한 학생들 성비를 1:1로 맞추지 않고 그저 전체 인원만 받았던지 아니면 남학생의 지원이 없었던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와 영준이, 태훈이, 윤호 4명은 여학생과 지내게 되었다. 일본인이라서 어떤 말을 해야 서로 대화가 통할 지, 집안 문화가 어떤지도 모르겠는데, 거기에 더해서 여학생이라니. 남중, 남녀분반을 거치며 이성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던 나인데 게다가 일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니. 그런 상황들 때문에 나는 멘붕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이후 홈스테이를 할 때에는 정작 이야기가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잘 지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통보받은 남자애들끼리 서로 혼란스런 심정을 공유(?)하는 등, 실제 홈스테이 시작 전까지 상당한 정신적 혼란(?)에 빠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오후 5시가 채 안 되어서 첫 날의 모든 공식 일정이 끝이 났다. 아침 8시 부터 밤 11시 30분까지 끊임없이 학생을 돌리는 한국식 학생생활에 너무 익숙해서 였는지 시간이 매우 널널하게 주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첫날이어서 그런가 생각했더니 이후 일정에도 저녁시간까지 가는 일정은 없어서 이유를 찾으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센터 직원분들의 칼퇴근을 보장하기 위한 매우 합리적인 일정일 뿐이었다.
그 날은 센터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뒤 (나는 고기 종류를 먹지 않지만, 다른 모든 이들에게 이 날부터 치킨 카라아게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밖으로 나가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다들 같았던 듯, 다들 인근 린쿠타운 쇼핑몰에 다녀오던가 편의점에 가는 것 같았다. 나도 몇몇과 함께 동네 슈퍼에 가서 먹을 걸 사왔다. 일본 과자나 간식류는 입맛에 맞지 않아 사지 않았지만, 음료수 몇 종류와 컵라면 등을 사왔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사는 동네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전형적인 일본 중소도시 거리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2월 9일 오전, 공식 오리엔테이션
다음 날 오전 9시가 메인 홀에서의 공식 오리엔테이션이었다. 간사이 센터 원장님부터 시작해서 직원 분들의 소개를 들었고, 각자의 자기소개가 있었다. 나는 2편에서 언급한 사전 과제로 작성한 자기소개서 내용을 떠올리며, 간단하게 소개를 마쳤다. 자기소개 당시 인상깊었던 분이 센터 부원장님이었는데, 말을 매우 빨리, 그리고 많이 하셨다. 그 말하기 방식에 당황해서 '왜 이렇게 빨리 하시지? 우리를 시험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후 설명으로는 그게 일본인들 보통의 말 속도라고 했다. 이후에 만난 분들이 다들 외국인인 우리 사정을 감안해서 느리게 말한 것인지 어떤 지는 몰라도, 그런 속도의 말을 그 후 연수중에 들을 일은 많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를 맡게 된 선생님은 네 분이셨다. 우리를 전반적으로 맡아서, 외부에 연수여행을 갈 때도 인솔해 주시는 분이 요시모토 선생님과 오노데라 선생님. 요시모토 선생님은 뭔가 점잖은 느낌이었고, 오노데라 선생님은 서글서글한 느낌. 작년 연수에 왔던 OB(특히 여자)들이 그렇게 열광했던 분이 오노데라 선생님이라는데, 그 때문인지 이번 연수에서는 비교적 남자애들에게 더 붙어 있으려는 느낌이 있었다. 우리가 센터에서 받는 교육을 맡아주신 선생님은 오오니시 선생님과 히로카가 선생님 두 분이었다. 오오니시 선생님이 쿨한 성격이라면 히로카가 선생님은 푸근한 성격의 인물이었다. 외형도 그 성격을 따라가는 지 첫인상부터 그런 느낌이었다.

#수업 & 사노고등학교 방문 준비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뒤, 메인 홀에서 바로 일본 지리, 교토 가이드, 간사이벤 가이드 수업이 있었다. 일본 지리야, 정말 일본에 왔으니 간단한 소개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내용은 국토구성, 기후, 사계절 등 고등학교 일본어 교과서 문화 파트에 나오는 수준의 소개였다. 교토 가이드는 1/12-1/13에 있을 교토 연수여행을 위해서 넣은 듯 했다. 이 가이드에서는 토의 역사, 그리고 바둑판식 거리, 교토양식 가옥, 교토의 음식들과 같이 교토 시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들을 배울 수 있었다. 또, 우리가 가게 될 후시미이나리 신사, 청수사 부근, 리츠메이칸 대학, 그리고 직접 체험하게 될 교토 전통 유젠조메(友禅染) 방식의 염색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이후에는 간사이벤 수업이 있었다. 간사이벤 자체가 일본 방송등에서 자주 쓰이는 하나의 소재이기도 하고, 우리가 지낸 곳이 주로 간사이 지방이니 만큼, 나름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벌써 간사이벤을 알고 있는 이들도 연수단에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던 부분이어서 재밌게 들었다. 공부 자체를 도쿄 지방의 표준어(?)로 할 수 밖에 없었으니 이후에도 입에 자연스레 붙지 않아 그닥 쓰지는 않았지만...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다음 날 부터 있을 사노고등학교 방문과 홈스테이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일본의 고교 생활과, 사노고에 대한 정보, 홈스테이 예절에 관해 간단히 안내받고 사전과제로 제시되었던 조별발표자료 준비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준비라고 해봤자, PPT를 정리하고, 각자 할 멘트를 적는 것 정도여서 수월하게 끝이 났다.

#인근 마을 산책
이날도 역시 오후 5시가 되기 전에 끝이 났다. 나는 우리 조 준비가 끝이 난 뒤 같은 조였던 윤호와 함께 센터 주변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센터를 나와 남쪽으로 향해, 난카이 본선 요시노미사토 역 까지 가보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각종 미디어에서 나온 전형적인 일본 마을 거리 풍경이었다. 단독 주택이 주루룩 늘어서 있었고, 목조에 기와를 얹은 주택도 간간히 보였다. 조그마한 동네 슈퍼나 잡화상 같은 집이 간간히 보이는 게 지금의 한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마을 풍경 같았다. 주유소의 천장에 달려 있는 주유기라던가, 거리에 수없이 보이는 자판기, 특히 술이랑 담배 자판기가 내가 한국이 아닌 일본에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이들이 모두 어딘가 이색적으로 보이는 일본 마을 풍경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길가에 있던 주유소. 호스가 천장에 매달려 있어 신기했다. 


가는 도중 동네 타코야키집이 있길래 한번 현지 타코야키를 먹어보자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들어갔다. 아주 자연스런 간사이벤을 구사하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장사를 하고 계셨는데 가게 안에는 입식 테이블 및 의자 구역도 있었고, 더 안쪽으로 보니 다다미가 깔려 있는 일본식 좌식 방도 있었지만, 안으로 들어가 앉을 엄두는 못 내고 입식 구역에 앉아서 타코야키 몇 가지를 주문했다. 레몬, 간장 등등 여러가지 맛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가게 인테리어도 나름 분위기 있는 편이어서 오래되어 보이는 구식 미싱기, 카메라 등이 진열되어 있었고, 80년대에 나온 영화나 애니메이션 포스터나 관련 잡지들도 있어서 뒤적거리며 타코야키가 나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있을 때도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몇 오셨는데 그럴 때마다 아주머니는 적어도 내가 이해하기에는 힘든 간사이벤을 구사하며 손님을 맞았다.

이 날 들렀던 타코야키집


기다리며 타코야키 집 아주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스럽게 이 때는 간사이벤을 덜 쓰셨다) 이때도 인상깊은 기억이 몇 있다. 어디서 왔냐고 묻기에 한국에서 이수현씨 기념 연수단으로 와서 간사이 센터에 지내고 있다고 하면서 이수현씨를 아냐고 물었다. 이름만 듣고는 기억 못했지만, "동경 지하철에서 떨어진 사람을 구하려다..."라는 말을 하자 안다면서, "그 안타까운 애.."라는 말을 하셨다.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더 자주 기억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아무한테나 물어서 그런 답을 듣기는 처음이라서 놀랐던 것 같다. 거기에 더해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에 대해, 일본이 과거에 한국에서 안 좋은 일을 많이 벌였다고 말하시면서, 한국어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신 것에는 감동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본에도 한국에 대한 여러 시선들이 있을 텐데, 역사에 대해 반성하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또 그런 분을 만날 수 있던 점은 정말로 기쁘게 생각한다.
그렇게 타코야키 집을 나왔다. 나올 때 다시 오겠다고 말했고, 정말로 한국에 오기 전에 한번 더 들러보고 싶은 가게였지만, 어쩌다 보니 들를 수 없었던 것이 연수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나중에라도 센터에 방문하게 되면 한번 더 가 보고 싶은 가게로 마음에 남아있다. 이후에 우리는 동네 신사도 둘러보고, 절도 가보면서(늦게 가서 문이 닫혀있었지만) 천천히 센터로 걸어서 돌아왔다. 타코야키를 포장해 사가서 센터에서도 먹었는데, 나름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